㏇웃고 살자 ㏇

탁발 노승의 예언

어울림 소나무 2018. 10. 14. 19:27

탁발 노승의 예언

탁발 노승의 예언

법 없이도 살 마음씨 착한 홍가는 찢어지게 가난한데도 자식들이 북적거리니 사람들은 흥부네 라고 불렀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나무뿌리 되도록 일 해도 여덟 식구 입에 풀칠하기도 바쁘다.
보릿고개만 되면 초근목피로 겨우 목숨을 이어가는데. 그 와중에 홍가 마누라는 합방만 했다하면 배가 부르니 또 하나의 입이 늘어난다.

홍가 내외의 한숨이 땅 꺼지듯이 한데.

어느 날, 노승이 홍가네 집에 탁발을 와서 좁쌀 한줌을 받아 넣고는 홍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낳을 아들이 열이요, 키울 아들이 일곱이네!” 하고는 휑하니 사라졌다.
“열을 낳아 일곱을 키운다? 그럼 셋은 죽는다는 말인가? 아이들이 벌써 여섯인데 넷을 더 낳는다고?” 한귀로 듣고 흘려버렸지만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막막하다.

그날 밤, 곰방대 담배연기만 내뿜던 홍가가 바느질하는 마누라에게 말을 꺼냈다. “여보, 내가 아직은 기운이 창창하고 당신의 달거리가 끊어질 날이 까마득하오. 식구가 계속 불어날 것은 불 보듯 뻔 하니. 큰아이가 열여섯이고 둘째가 열넷이니 밭뙈기 농사는 당신과 아이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오. 나는 이삼년 어디 가서 머슴 살다가 새경을 받아 오겠소.” 마누라는 홍가를 부둥켜안고 밤새 울었다.

다음날, 홍가는 식구들의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길을 떠났다. 며칠 후, 저녁나절 이름 모를 마을을 지나다가 말을 탄 선비를 만났다. “나으리,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이 동네에 하룻밤 묵어갈 주막이 있는지요?”
“없소. 주막이 있는 동네까지는 삼십 리는 가야 하니 오늘 밤은 우리 집에서 유숙하고 가시오.” 홍가는 선비에게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하고 뒤를 따라갔다.

선비가 홍가에게 어인 일로 이 동네에 발길이 닿았는지 물었다. 그러자 홍가는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다시 선비가 물었다. “글을 읽고 쓸 줄 아오?” “어릴 때 조부께서 글을 가르쳐주어서 사자소학에 명심보감까지는 읽었습니다.”

동네 맨 꼭대기에 자리 잡은 선비네 집은 솟을대문에 안채, 바깥채, 사랑채에 하인들의 요사채도 딸린 대궐 같은 부잣집이었다.  저녁을 푸짐하게 얻어먹은 홍가는 주인 선비의 부탁으로 밤늦게까지 문서를 정리해 주었다.

이튿날 아침, 선비는 떠나려는 홍가를 붙잡았다. 그날부터 홍가는 선비집의 집사가 되어 대소사의 일을 한 점 어긋나지 않게 말끔하게 처리하였다.
전답 목록을 들고 소작농을 찾아가 작황을 판정해서 지주 몫을 부과하는데 어찌나 공정한지 불평하는 소작인이 한사람도 없었다. 이런 사실을 보고하면 선비도 흡족해 하였다. 일 년이 되자 선비는 머슴의 두 배가 되는 새경으로 올려주었다.

어느 날 밤, 홍가가 장부를 들고 사랑방으로 갔더니 선비가 술잔을 건네며. “홍 집사는 아이가 몇이라 했지?” “여섯입니다.” “아들은 몇이고 딸은…? ” 홍가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모두 아들입니다.” 그러자 선비는 긴 한숨을 쉬었다.

주인어른과 안방마님 사이엔 자식이 하나도 없으니 집안에 웃음소리가 나지 않아 항상 적막했다. 달빛이 창호지를 새하얗게 물들였다. 입추가 지난 어느 날 밤이었다.

“삼신할미도 무심하지. 어찌 이런 집에 아들 하나 점지하지 않으실꼬!” 홍가가 풀벌레 소리에 잠 못 이루고 있을 때, 살며시 장지문이 열리며 치마 스치는 소리가 나더니, 왠 여인이 방으로 들어왔다. “소녀는 이 집 하녀이옵니다. 받아 주십시오.” 다짜고짜 치마와 고쟁이를 벋고 속치마만 입은 채 홍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꿈이라면 제발 깨지 마라! 여자를 안아 본 지 도대체 얼마 만인가. 허겁지겁 내리던 바지가 벌써 빳빳하게 솟아오른 양물에 걸렸다. 하녀의 옥문도 샘이 솟아올라 허벅지까지 미끈거렸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번개가 쳤다. 오랜만에 홍가는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그러나 양물은 아직도 풀이 죽지 않았다. 두 번째 운우는 서두르지 않았다. 홍가는 가진 재주를 부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세 번이나 까무러치던 하녀는 허겁지겁 사라졌다.

그로부터 여드레가 지난 날 밤, 또 한 여인이 하녀라며 들어왔는데, 가슴 언저리가 풍만한 것을 보니 전에 들어왔던 여인이 아닌 것이 확실했다. 닷새가 지난 날 밤, 또 다른 여인이 홍가의 방에 살며시 들어왔다. 홍가의 폭풍과 연이은 뇌성벽력을 겨우 견디고는 기다시피 맷돌 같은 사내 품에서 빠져나갔다.

석 달쯤 지난 어느 날 밤. 집주인이 홍가를 불러 눈꼬리가 사나운  남정네 한사람과 더벅머리 총각을 소개시켰다. “이분은 지관 어른이고 젊은이는 지관보일세. 내일 아침, 두 분을 모시고 재 너머 증조부님 묘소를 보여드리고 오게나.”

장지는 고개 넘고 개울 건너 숲 속으로 꺾어져 들어가는 첩첩산중 초입에 있었다. 홍가가 앞서고 두 사람이 뒤따랐다. 홍가가 고갯마루 주막집 마루에 걸터앉아 젊은 지관 보에게 물었다. “손에 든 게 뭐요?” “산에 오르면 목마르다고 술과 안주를 싸 줍디다.” 홍가는 눈코 쓸 새 없이 보자기를 풀어 고기 덩어리를 마당에 던졌다.

순식간의 일이라 지관이 “어어” 하며 보따리를 뺏으려는데 눈 깜작 할 사이에 주막집 개가 고기를 먹고, 버둥거리다가 사지를 떨었다. 칠첨사 독이었다. 지관과 더벅머리 총각이 하얗게 질려 벌벌 떠는데. 홍가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 가서 낮잠이라도 자다가 저녁때 선비한테 가서, 구덩이를 파고 나를 묻었다고 하게. 이 저고리를 가지고 가서 증거로 보이면 되네! 그러면 약조한 돈을 주실 것이네. 나는 머나먼 고향으로 가서,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으리다.”

살인 청부업자는 넋을 잃고 말문이 막혔다. 홍가는 발걸음을 돌려 고향집으로 향했다.

내막인즉 이랬다. 모두가 잠든 깊은 삼경에 안방마님이 홍가 방에 몰래 들어왔다. “홍 집사! 조용히 들으시게! 석 달 전에  가장 먼저 이 방에 들어온 하녀는 바로 나일세.  

여드레 후 두 번째 여인은 바깥양반의 첫째 첩이고 마지막은 둘째 첩이었네. 이 모두가 바깥양반이 시켜서 한 일이지! 셋 모두 잉태를 했다네! 자네는 종자보시를 잘해서 복 받을 것이야.
내일 살인청부업자 두 사람이 지관으로 위장해서 당신을 죽이려고  할 테니… 여차 저차 하시게.
홍가는 안방마님이 싸 준 금붙이와 엽전을 전대에 넣어 허리에 차고 그 집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갔다. 

문득 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낳을 자식은 열이요, 기를 자식은 일곱이라.”아무리 계산해도 하나가 모자란다. 한데, 홍가가 일 년 반 만에 집으로 돌아왔더니 “으앙~” 아기 울음소리가 사립 바깥까지 새어나왔다. 집을 떠나기 전날 밤, 마누라에게 뿌린 종자였다. 다시금 꼽아보니 스님의 예언대로 열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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